소파 방정환
본관은 온양(溫陽), 호는 소파(小波)로 일본 유학 시절에 그에게 영향을 끼친 일본의 아동 문학가인 이와야 사자나미(巌谷小波)의 이름과 같다. 이외에도 잔물, 잔물결, 물망초, 몽견초, 몽견인, 삼산인, 북극성, 쌍S, 서삼득, 목성, 은파리, CWP, 길동무, 운정, 김파영, 파영, 생이라는 이름을 필명으로 사용하였는데, 이는 일본의 언론 검열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1931년 7월2일, 오랜 지병과 과로로 인한 고혈압의 합병증이 겹쳐 향년 3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색동회
1923년 3월 16일 발족하여 1923년 5월 1일 일본 도쿄[東京]에서 방정환(方定煥)을 중심으로 손진태(孫晋泰)·정순철(鄭順哲)·고한승(高漢承)·진장섭(秦長燮)·정병기(丁炳基)·강영호·조준기 등이 창립하고, 뒤에 조재호(曺在浩)·윤극영(尹克榮)·최진순(崔瑨淳)·마해송(馬海松)·정인섭(鄭寅燮)·이헌구(李軒求)·윤석중(尹石重) 등이 가입한 '어린이문화운동단체'이다.
아동보호운동의 선구자인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들이 따뜻한 사랑 속에서 바르고 씩씩하게 자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불우한 어린이들이 인간으로서의 긍지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하며,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는 여러 가지 행사를 실시하기 위해 어린이날을 지정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시절, 어린 아이들을 부르는 말조차 없었던 시대.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이 시대를 헤쳐나갈 수 있는 것은 어린 후세대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1923년 5월 1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경운동 서울 천도교본부 운동장에서
1000명이 넘는 어린이들이 모인 특별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 행사는 바로 어린아이들을 '어린이'라 부르던 첫 순간이었던 우리나라의 첫 어린이날이었습니다
그렇게 성공적인 행보를 보이던 방정환 선생님은
1928년 20여 개국이 출품한 '세계아동예술전람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끝으로,
1931년 7월 23일, 건강의 악화로 33살의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1937년, 15회를 맞은 어린이날을 일제는 핍박을 하였고,
강제로 기념식을 해산시키고 어린이 문화를 짓밟게 됩니다
이 후 중단된 어린이날 기념식은 해방된 이듬해인
1946년 5월 5일 건국준비위원회에 의해 다시 빛을 보게 되었고,
1961년 아동복리법으로 5월 5일이 어린이날로 지정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이 후 1970년대에 '어린이날 선물'이 보편화 되었고
1975년부터 공휴일로 지정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합니다.
Comments